2024년 10월 10일, 노벨 문학상 발표가 나왔다. 문학동네 업데이트 알람을 설정해두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알람이 뜨고 벌떡 일어났다. 한강!!! !!!! 유난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심연을 건드린 사람, 쉽게 말해 내 사고 회로에서 정의되지 않은 부분을 건드린 사람, 간단히 말하면 부모님 다음으로 내 생각에 가장 영향력 있던 인물. 늘 헤르만 헤세와 한강을 말해왔다. (올해 발터 모델이라는 독일 장군이 추가되긴 했다.) 참고로 헤르만 헤세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헤세는 나한테 다양성을 알려줬다. 헤세의 모든 책을 읽었고, 한국에서 수집할 수 있는 헤세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던 두 달이 있었다.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정말 유명한 작품들이 많지만 헤세가 하는 말은 하나로 귀결된다. 다양성을 인정하며, 낭만을 좇아라. 헤르만 헤세를 알면서 나는 타인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알을 깨는 새가 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겠다며 낭만을 꿈꿨다. 헤세를 알기 전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다르게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헤세가 내 심연을 건드린 순간부터 완전히 같지만, 완벽히 달랐던 내가 알을 깨고 태어났다. 헤세 덕질?을 하면서 헤세를 청소년기에 만났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헤세의 책을 읽고 심연이 움직인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니까. 헤세 다음으로 내 심연을 움직인 사람은 한강이다.
2015년, 13살에 하교전에 매일 하루에 2권씩 책을 빌려서 집에 가서 읽곤 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10회독 이상은 했었을 시절이고, 작은 집에 사는 나는 큰 집에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하려고 건축잡지도 빌려서 가져왔다. 나는 마침 도서부원이고 학교 도서관에서 전교생 중에 가장 책을 많이 빌린 학생이라 신간 코너나 베스트셀러가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책을 읽어볼 수 있는 이상한 특권이 있었다. 특권이라기보다는 사서쌤이 정리하실 때, 옆에서 기웃기웃거리며 나댈 수 있을 만큼 사서쌤과 친했다. 그때 신간 코너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처음 봤다. 이름이 한강이라 신기했다. 빌려와서 읽다가 정말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한강 소설의 첫인상이란, 읽을 수 있지만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글의 집합이었다. 10페이지 남짓 읽고, 못 읽겠다고 실토하고 다음날 아침에 사서 선생님께 가서 이건 누가 읽느냐고 한 기억이 떠오른다.
2016년, 나는 그때도 도서부원이었고, 잡식성 다독가였다. 그래서 사회성이 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중2 때까지는 학원을 다니지도 않아서 학교 끝나면 집이나 독서실에서 혼자 음악 들으면서 드라마나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게 대게 주된 일상이었다. 그때 읽은 책이 <소년이 온다>다. 이때는 한국 근현대사 덕후 시절이라 채식주의자보다는 이해하기 쉬웠다. 5•18에 감정적 요동은 없었지만, 일 년 전에 읽었던 <채식주의자>한강의 문체를 이해하며 빗대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저 단락 단락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 네가 죽은 뒤에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서,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 고름, 썩은 침. 그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아니 그것 자체가 바로 나다. 그것들 속에서 썩는 살덩어리가 나다 / 죽을 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와 같은 부분들이 생각난다. 2016년의 나는 상실의 아픔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2017년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봄방학에, 독후감 따위를 쓰면서 독후감을 한강의 글처럼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동경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2년 만에 출산휴가를 쓰고 나오신 국어 선생님은 2년 전 도서부 담당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 사람을 똑똑히 기억하지만, 수많은 학생 중 나는 학생 43일뿐이다. 그 사람이 첫 번째 수업에서는 오티를 했고, 두 번째 수업 때 지나가는 말로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고 말했고, 그리고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의 책표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책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근현대사 민주 항쟁에 대한 매체를 보면 어디서 온지 모를 정의감을 기반으로 분노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매일 아침 조선일보 사설면에서 혼자서 나라 욕만 하는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양가 할머니께서 빈번하게 아프셨다. 그때 상실의 아픔을 처음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걸 통보받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할머니들과의 추억은 별로 없다. 아마도 할머니 관련된 일에만 눈물을 보이는 아빠 때문에 슬펐던 것 같다. 아빠는 눈물이 없는데,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냉정하고 독한데. 할머니의 암에 대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울곤 했다. 할머니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빠의 눈물은 할머니의 암 선고에서 비롯되었으나, 내 가슴 통증은 아빠의 눈물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다르다. 달랐지만 내 통증은 아빠나 엄마도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 유발됨을 인지하니, 그다음에서야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준 할머니와 조건 없이 내 아버지를 사랑해 준 할머니에 대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 사고 회로가 지나서야 드디어 상실의 아픔을 직관적으로 마주했다. 할머니가 수술받는 주말 내내 울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울음을 그쳤다. 난 그때부터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보통의 사람이 되었다. 특히 그게 실화를 기반으로 하면 더 그러했다. 노란 리본을 보면 눈물이 났고, 새벽에 416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다가 충동적으로 통장을 털어 기부한 일도 있었다. 2019년 겨울일까 2020년 봄일까 <소년이 온다>를 우연히 다시 읽었다. 그걸 읽었던 일주일 동안 정말 우울해서 잠이 안 왔다. 정리할 수는 없겠으나, 상실의 아픔을 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비유적으로 인지했던 것이라 본다. 한강에게 관철당한 것일지도. 책을 읽고 울었던 첫 경험이다. 2016-7 내 글의 몽타주가 되었으면 했던 한강은, 2019년에는 나를 울렸고, 한동안 우울할 때 읽는 책이 되었다. 당시 하현상 1집 kohsamed 와 한랭한 냉기와 한강의<소년이 온다>는 깊은 우울감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우울감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걸 나에게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성인이 되어서 나에게 <작별하지 않는다>가 찾아왔다. 만 21살 때 유진이한테 생일 선물로 받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묘하게 소년이 온다 와 연결고리가 있다. 책을 처음 시작할 때, 한강 소설은 속독하지 못하니까 천천히 음독하며 읽을 수밖에 없겠군 하며 책을 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가장 기억나는 문맥이란, 엄만 물고기를 먹지 못했다고, 수많은 시체가 바다에 버려졌으니까. 물고기밥이 된 가족을 먹지 못해서 바닷고기를 먹지 못하고, 고구마를 먹지 못한다. /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든다. / 얼마나 밀도가 낮은 눈인지. 와 같은 것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온다보다 더 정신적으로 괴로웠다. 계속해서 장면이 바뀌고, 계속해서 아픔을 보인다.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이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애도이며,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이란 사랑이다. 추모와 애도는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목은 이제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울컥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한강의 역사를 찾아보고, 한강의 시나 수필, 심지어는 한강이 외국에서 글을 쓸 때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읽었던 책이나, 한강이 듣는 플레이리스트까지 따라 들으면서 그녀의 발자취를 밟았다. 그녀의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유리가 나에게 굉장히 익숙하다는 점에서 운명적이었고, 수많은 이사를 다녔지만 그 종착지를 자기 추억이 많았던 우이동에서 생을 끝내고 싶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작년 겨울에 인기 순위에 있는 한강의 북토크를 모두 폴더에 옮겨서 1.25배속으로 봤었는데, 그제야 이런 글을 쓰는 것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담으로 한강 작가는 유년 시절 가난하지만 굉장히 엘리트적인 코스를 밟았다. 우이동에서 심지어 여자임에도 고등학교를 종로까지 보냈다는 것은, 특출난 뭔가가 있었을 것이라 어림짐작해 본다. 그 당시 우이동은 사기꾼 동네, 수유는 역 종점, 이어진 번동은 도둑 동네.로 인식이 강하다. 이런 지역의 사전 지식만 있어도 그 사람을 더 감도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한강이 바닥부터 기어올라온 사람이라 더 마음이 간다. 호화스러운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에 자연스레 가고 사랑스럽게 살아온,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이 작가를 동경하며 그래서 늘 내 우상이었던 것이 5할인 듯하다. 이런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바닥부터 올라온 사람,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뚫고 나아가는 사람보다 멋있는 사람이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발터 모델을 존경한다.
레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닮아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아픔을 담고 있다. 이 말이 참 슬프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서로가 이해할 수 없기에 다들 많이 힘든 걸지도 모른다. 아픔의 형태가 같다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일까. 독재 정권, 페미니즘, 광주 5•18, 제주 4•3. 우리 민족의 공통된 아픔이 담긴 책이 인정을 받았다. 여기서 드는 희망이란, 아픔의 형태는 다를지언정 모두가 이해하려고 하며, 비유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도 다른 가정의 아픔을 다독인다. 분명히 흉터의 모양도, 곪은 마음도 다른데, 글이라는 매체가 하나의 마음으로 응축시켜 서로를 보듬는다. 이 부분에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최악으로 치닫는 순간에, 나보다 못나 보이는 것들을 찾으며 타인의 우울로 내 아픔을 회피했다. 중2 때부터 우울할 때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자주 사용했다. 또는 비인격적이게도, 걸으라는 니체의 말과 내 이기심을 엮어 합리화시켜 서울역 노숙자를 보러 가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우울증이 있는 작가한테 찾아가서 나는 당신 슬픔을 이용하는 내가 혐오스럽다. 고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혼자 가서 한다는 말이 당신의 우울이 나보다 어두워서 힘이 된다, 그러나 이런 내가 혐오스럽다라니.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다. 그 작가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자기 슬픔을 마음껏 가져다 쓰라고 편지도 써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답이 있었구나. 다른 형태의 마음을 서로 끌어안고 울면, 비교하지 않고도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수용할 수 있는 것이구나. 연민도 아니고 자기 위로도 아니며 내가 극혐하는 선민의식도 아니다.
이런 마음은 그저 교과서로, 교육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한강의 글이 내 심연을 건드린 것이라고 느낀다. 글이 주는 힘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낀다. 이 마음이 노벨 수상으로 더 증폭된다! 외국인들 반응을 찾아봤는데, 이란•터키 사람이 하는 말이 이렇다. 우리나라에 한강보다 위대한 문학가들이 있다고. 처음에는 화났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우리나라 국력이 참 높아졌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소외된 국가의 다른 한강들이 노벨상을 받는 날이 왔으면 한다. 또한 그동안의 과거 한국의 노벨상을 받을 만큼 위대한 문학가들을 떠올렸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작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 작별하지 않는다는 오픈 엔딩으로 끝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 말해도 참 좋다. 작별하지 못하지만, 않는다라고 의지를 보이며, 또는 작별할 수 있으나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아픔을 추모한다. 이 엔딩으로 나는 닫힌 엔딩보다 열린 결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란 극도로 현실적이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타서 울컥하는 마음에 새벽에 작별하지 않는다에 라벨지를 붙여놓은 걸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이란,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글을 이렇게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격스럽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새벽 감성이라 울컥하는 마음 9할이겠지만 이런 날것의 감정이 기록으로 남아있으면 한다. 2024년 10월 10일을 오래 작별하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