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다양성의 사유
데미안을 다시 읽게 될지 몰랐다.
헤세의 글을 좋아하지만 데미안을 처음 읽을 때 재밌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또 이해하지 못했기에 남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렸을 때 일이다.
아빠가 가끔 랜덤으로 저녁에 오늘은 무슨 책을 읽었냐고 물으면 유치원생인 나는 신데렐라나 빨간머리앤같은 소녀 이야기의 책을 말하곤 했는데 맨날 똑같은 것만 읽냐고 화내서 데미안 읽었다고 구라쳤다가 뒤지게 혼난 기억이 있다. ㅠㅠ
(어떻게 유치원생한테 그렇게 매몰찰 수 있는가..)
그때 데미안 읽었다고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딸이 귀엽지만 앞으로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일부러 극대노를 하셨다는 나의 ESTJ 아버지의 최근 변명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중학교 2학년 때 독서실에서 시험공부 안 하고 당시 멜론 차트 1위인 볼빨간 사춘기의 우주를 줄게를 들으며 데미안을 읽었는데, 그때도 사실 이해는 안 갔다. 그래도 읽자 하고 읽다가 새는 알에서 깨려고 투쟁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각자가 해석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뿐이다.
나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간다.
일단 크게 세 가지로 두어본다. 무엇에 주안점을 두는 문장인지는 모르겠다.
1. 온전히 자신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2. 이해할 수 있음에도 타인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해야 하는 존중)
3.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다른 삶은 해석이 불가하다.
이해와 해석이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해란 사랑이 깔려있다. 해석은 사랑이 깔려있지 않다.
이해란 주관이 개입한다. 해석은 주관을 최소화한다.
잘 모르겠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서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이해 :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해석 : 문장이나 사물 따위로 표현된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함.
사물이나 행위 따위의 내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일.
아마 분명한 건 번역본을 읽었기에 이를 따지려 드는 것이 멍청한 행위일 수 있다. 그래도 표준 국어 대사전이 해답을 내려줬다. 해석의 정의에서 이를 찾을 수 있었다. 해석~이해의 정의로 보면 계속적인 동어 반복인데 ‘판단’과 ‘설명’의 어휘에 주목했다.
각자가 해석=판단=가치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따라서 타인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타인에게 가치를 개입할 순 없다. 타인과 나와 우리 모두는 고유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데미안의 핵심 키워드를 알아낼 수 있다.
데미안은 다양성 사유 에 관한 이야기다.
초반부에 나온 아름다운 양지의 세계에서의 싱클레어의 감정이란 어찌 보면 마지막 순간인 전쟁에 나가던 군인들의 신념과 닮아 있다. 하여 역설적으로 이를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그 도취 또한 유의미함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좋은 날은 왜 그리도 드물었는지 ! = 적은 도취의 시간
계속해서 다른 세계를 말한다.
싱클레어 입장에서 두 세계다.
데미안은 크로머의 세계를 인지한다. 또 싱클레어의 세계 또한 인지한다. 데미안에게 세계는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헤세는 한 시대에서의 서로의 다양성에 관해서 말한다. (일단 싱클레어 유년 시절에서는) 나는 이 다른 세계에 대한 표현을 보면서 페러다임을 떠올렸다. 시공간을 넘어 계속해서 큰 틀을 잡는 세계가 존재한다. 한 시대를 잡고 있는 페러다임 간의 갈등 ! 이게 헤세가 고민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헤세는 나치의 시대에 있었으며, 신이 있는 페러다임 세계에서 신을 부정했으니까 말이다.
그냥 희곡의 살인 문장일 뿐인데
나는 이 표현이 와닿았다.
나는 내일이 두렵다기보다 지금 내 길이 계속 아래로 곤두박질쳐 어둠 속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확신에 모든 것이 끔찍했다.
내일이 두렵지 않지만 더 먼 길에 대한 두려움
나도 느껴봤던 감정이라 확 꽂혔던 것 같다. 그때 마침 옆에 있는 L 씨에게 침몰하는 배에 있는 것 같다고 감정을 토했던 기억이 겹쳐서 생각났다.
사실 해결이 된 건지 감정이 희미해진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조금 후에 데미안이 말한다.
두려움이 어디서 온 지 찾고,
나를 지배할 권력을 허락한 그 두려움의 원천을 제거하라고 한다. (제거하라고 하진 않았다. 근데 일단 나한테 그렇게 들린 거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다.
이게 데미안이 말하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 느낌이 나와 누군가가 아닌 나와 something 과의 관계를 형성했다는 표현이 좋았다.
- 가장 깊숙이 자리한 비밀의 방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피를 흘린다.
~
격하게 공감한다. 깊숙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추상적인 무언가는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아직 살아남아있다. 공황장애와 ptsd는 그냥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는 분이 갑자기 멀쩡하게 도넛 먹다가 공황장애로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얼핏 기억난다. 이게 남 얘기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남아있는 무언가를 떠올려야 한다.
그렇다.. 내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 중에 하나인데
한겨레 같은 진보 신문을 볼 때는 80살 먹은 갑부 할머니의 마음을 갖고 읽고, 조선일보 같은 보수 신문을 볼 때는 내 마음에 전태일이 있는 듯한 마음으로 읽는다.
사실 이따위로 읽다 버릇하니 누군가의 꼬투리만 짚어내는 습관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여튼 그래도 신문이라는 매체 즉, 기자가 쓴 글은 내가 받아들이는데 대부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도 데미안의 이 말을 유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동의한다. 강자가 약자를 죽이는 건 모든 페러다임에서 늘 있던 일이다. 꼭 멍청한 사람들이 언플당해서 약자인지도 모르고 죽이면 안 된다고 외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난 그래서 바닥에서 아득바득 기어올라가는 서사를 광적이게 좋아한다. (예를 들면 주원장)
동물이나 사람은 어떤 특정 목적을 향해 주의력과 의지력을 온통 쏟으면 그 목적을 이루게 된다.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
원래부터 이 의지를 좋아했다. 인간은 전혀 못할 게 없다고 - 보통 누군가 안될 것 같다고, 통념에서 벗어난다 할 때.
목적을 달성한 이는 눈에 보이는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라는 결과와 추대가 남는다. 모두가 같은 행위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창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내가 본 위인전에 나온 사람들이며, 당장의 헤세이며, 싱클레어이며, 데미안이다.
내가 이 의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발터모델이다.
히틀러의 장군 중 한 명, 총통의 소방수로 불리던 사람이다.
발터모델의 민족주의 따위엔 관심이 없다.
발터모델이 후퇴하면서도 소련군을 계속 빠르게 공격하면서 도망간다. 작전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난 이걸 높게 친다. 만약 여기서 소련 진군 속도가 늦춰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미국 시대가 아니라 소련 시대라고.. 소신 발언해 본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고, 남들이 생각했더라도 행동으로 보이지 못했던 기지의 발현이다.
이를 해낸 모델의 기지를 존경한다. 뛰어난 전략가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발터 모델의 작전들을 현대에도 군에서 가르친다 들었다. 히틀러의 장군이라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전략 면에서 존경할 점이 있다는 것, 모델은 특정 목적이 생기면 반드시 이루어내는 장군이었다.
발터 모델은 늘 하면 된다 고 한다. 근데 맞는 말이다
가장 관심 있는 인물인데 자살 전에 본인 기록을 지워버려서 남은 정보도 많이 없고, 한국에서는 별로(?) 안 쳐주는 장군이라 좀 아쉽다.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베아트리체
Beatrice
어쩌다 보니 나의 영어 이름이 되었다
데미안이나 괴테에서 얻어온 이름은 아니고
최근에 누가 지어줘서 생겼는데
[비아트리스]라고 발음할 줄만 알고
스펠링 쓸 줄만 알았지
이게 그 괴테의 베아트리체,
데미안의 베아트리체인 줄은 몰랐다.
갑자기 이름이 마음에 든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의 존재로 사랑과 운명을 계속해서 기대한다. 나는 모든 싱클레어의 성찰보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베크의 사랑은 싱클레어가 생각한 사랑보다 더 좁고 평범했다. 또한 베크가 싱클레어보다 더 많은 여자를 만난 것도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싱클레어는 베크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평범해 보이는 사랑을 자연스럽다고 이해하며 자신의 운명은 계속해서 기대한다. 난 이 싱클레어의 모습이 다른 모습보다 기억에 남았다. 싱클레어가 다음과 같이 묘사한 베아트리체는 정말 마음에 든다.
~ 더 이상 설레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내 운명의 일부입니다.
~변화를 시작한 것은 베아트리체.
~나는 그녀를 베아트리체라고 불렀다.
~운명과 기질은 같은 개념에 붙여진 이름이다.
Beatrice
이게 함축하는 게 뭔 개소린지 모르겠다.
이걸 누군가에게 물었는데
괴테의 심연을 이해해 보라 한다.
그래서 그 어렵다는 괴테의 걸작, 파우스트를 오디오북으로 틀어놓다가 걍 잠들어버렸다 ..
이 말을 항상 좋아한다 늘!!
아브락사스는 악마와 태양 모두를 상징하는 그런 존재다
나는 늘 운명을 동경한다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갈망해라.
타인의 사랑을 존중하라.
사실 운명과 가랑은 같은 말인 것 같다.
운명이 항상 거기, 내 위에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맞는 말이야..
내가 미워하는 사람..
사실 요즘은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데
미워했던 사람은 내 뭔가를 닮았었던 거 같아
진짜 도망치는 게 뭔지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포기란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가능하다
그래서 도망치는 건지 포기하는 건지 정의를 확실히 해야 된다고 스스로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성찰의 정답 : 깨우침을 얻은 인간에게는 길을 위한 의무만 존재한다.
카뮈나 헤세나 같은 말을 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겟어..
아니 알 것 같기도
향상되든 안되든 그건 더 의미 있다는 거구나..
근데 끼발이걸.. 인정을 어케하지? 헤세는 하느님이야..? 아 아니지 아브락사스세요..?
헤세의 로맨스에 대한 표현..
이끌리는 사랑과~ 본모습 ..
헤세는 정말 로맨티시스트야
처음에 말한 시점으로 돌아옴
카인의 표식이나 데미안의 엄마 같은 것에 대한 해석을 좀 더 보고 싶다. 내가 빡대가리라 이해 못 하는 걸까? 아님
추상적인 걸까 ㅠㅠ
*사진이랑 같이 쓴 걸 복붙해서 싱크가 안맞는다.
일단 올려둔다.